노동자대통령 김소연 후보 11월 24일 동행일기
경찰의 봉쇄 넘어 거리로 나간 노동자대통령
지난 4월 4일이었다. 쌍용차 77일 점거파업을 같이 했고 최근까지 투쟁에 함께 했던 동료가 김포의 한 아파트 23층에서 투신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쌍용차 간부들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싸워야 할 지 답답했다. 쌍용차 공장에 분향소를 설치하자고 했다. 그 때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여론의 중심인 서울 대한문에서 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명박 정부 심판과 야권연대, 여소야대에 대한 기대로 쌍용차 22번째 죽음에 대해 아무도 관심이 없을 때였다. 대한문과 평택에서 같이 싸우기로 했다.
4월 5일 대한문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끔찍한 경찰의 폭력 앞에서 남성 조합원들은 속절없이 끌려 나갔다. 여성노동자들이 몸을 던져 영정사진을 지켰다. 노동자대통령 김소연 후보와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경찰의 폭력을 온몸으로 견디며 분향소를 지켰다. 5일 동안 경찰에 끌려가고 병원으로 실려 갔고, 결국 작은 천막 하나를 칠 수 있었다.
“쌍차 22번째 죽음이 생기고 대한문에 초라한 분향소를 차렸을 때, 해고자들 옆에는 기륭 김소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날 김소연의 발은 경찰에게 밟혀 뼈가 으스러졌다. 김소연은 깁스를 한 채 보름동안이나 쌍차 해고자들과 함께 싸웠다. 그녀가 대선에 노동자후보로 추대되었을 때 난 그녀 옆에 서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가 우리 곁에 있었던 것처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고동민 동지가 트윗에 쓴 글이다. 그렇게 온 몸을 던져 싸워서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 관심으로 만들어냈지만, 국정조사라는 소박한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41일 곡기를 끊고 싸우다 쓰러지고, 송전탑에 올라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4차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날, 대한문에서 백기완 선생님과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났다. 노동자대통령 후보로 처음 백기완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2주 만의 만남이었다.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라”고 당부하셨던 선생님이 두 손을 잡고 힘내라고 당부하신다.
매주 집회가 열렸기 때문일까?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일까? 대선의 열기에 빠졌기 때문일까? 서울광장에는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모였다. 박근혜 후보는 차치하고, 전날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어수선한 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민주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참석하지 않았다.
쌍용차 분향소를 방문해 김정우 지부장의 손을 잡고 단식 중단을 호소했던 문재인 후보는 이틀 전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토론회에서 정리해고에 대한 얘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쌍용차 23번째 죽음의 문제와 철탑농성,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도 언급조차 없었다. 제 2의 IMF, 경제공황이 다가오고 있는데, 노동자들에게 양보와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는 이들에게 또 다시 우리를 대변해달라고 할 것인가. 김소연 후보가 왜 노동자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 싸워야 하는지 말한다. 잔잔한 감동이 흐른다.
서울광장에 어둠이 내렸다. 노동자들이 쌍용차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선다.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이 앞장선다. 경찰 방패 앞에서 길을 비키라고 말한다. 경찰들의 방패에 밀려 숨도 쉬기 힘든 상황이 계속된다. 부상을 당할 위험에도 맨 앞에서 당당하게 싸운다.
방향을 바꿔 지하차도를 통해 을지로로 나가자 경찰이 지하철 입구를 막아선다. 대통령후보가 앞장서서 길을 열 것을 요구한다. 막무가내로 버티던 경찰이 한참 만에 길을 연다.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을지로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종로를 향해 행진한다. 가로막는 경찰을 넘어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싸운다.
거리에서, 투쟁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왔던 이들이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에 참여하기로 했다. 반가웠다. 늦은 밤 전국에서 올라온 50명이 넘는 동지들이 모여 선거투쟁의 방향과 계획을 함께 논의하고, 힘을 모으는 시간을 가졌다. 시간은 훌쩍 12시를 넘었다.
두 시간 동안의 거리행진, 청와대를 향한 길은 가로막혔지만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답게 온 몸으로 싸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