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저항하는 노동자, 우리가 대통령!

용기와 배짱으로 세상을 뒤엎자!

 

저는 한 번도 부유하게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상업학교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들어간 학교는 재단비리의 온상 이었고, 87년 6월 민주화투쟁의 바람을 타고 사학비리척결을 외치며 싸웠습니다. 학내비리사건으로 시작된 싸움은 학내민주화싸움으로 발전하였고, 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92년 구로공단의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노동자가 되어서 노조활동을 하여 한번은 어용노조를 민주화 했고, 다른 한번은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비정규직의 설움에 6년이라는 긴 시간의 투쟁을 했습니다. 이것이 제 삶의 전부입니다. 특별한 능력도 없고, 백도, 돈도, 학력도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며 평화롭게 사는 꿈 외에 다른 욕심도 없습니다. 그런 제가 감히 대통령 후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으로 동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떨립니다. 하지만 노조활동을 하며 느낀 것이 있습니다. 모든 새로운 길은 어렵고 떨리지만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노동자 민중의 진보정치가 망가졌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소중한 염원이 더럽혀졌고 많은 이들의 마음은 절망과 냉소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습니까?

민주노동당이 출세와 분열로, 그것도 모자라 정리해고 비정규직을 만든 신자유주의 세력과 합당을 하면서 갈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비통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변절 이전에 민주노총의 변질과정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자며 투쟁을 합리성이라는 이름의 실용주의로 바꿨습니다. 뻥 파업을 안 한다고 하면서 뻥 파업도 못하는 민주노총이 되었습니다. 현장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권력을 회사에게 주며 실리만 찾는 노동조합, 민주와 어용의 구별이 사라지고 오직 승리를 위해 생어용과도 손을 잡는 승리 지상 출세주의가 판치는 노조 선거, 그 와중에 관료적 체계가 투쟁을 막고 관리하는 모습(우린 해결사가 아니라 함께 싸우길 원하는데, 노조가 마치 해결사처럼 사측과 투쟁하는 노동자 사이에 중재를 서는 기막힌 현실)이 그대로 민주노동당에서에서 재현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새로운 주체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주체의 출발은 지난 10년간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민영화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투쟁한 노동자들의 단결입니다. 아래로 부터의 현장성과 저들이 쳐둔 통제 선을 과감하게 뛰어 넘어 투쟁해 온 동지들의 역사가 무너진 노동현장, 무너진 노동정치를 복구해 내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현장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우리가 현장의 정서를 냉소와 허무가 아니라 낙관과 배짱으로 돌려 세워야 합니다.

대선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정치 공간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는 다시 권영길 이전으로 밀려버렸습니다. 이명박의 패악은 차악에 대한 선택을 다시 복구시켰습니다. 민주노동당의 패배는 민주노총을 정치적으로 식물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민주노총의 전 현직 간부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로 미안함도 없이 대거 이동하는 현실에 까지 와 있습니다. 몇일 전 민주노총 현 간부가 문재인 캠프로 가면서 ‘통진당 사태로 희망이 사라져서’라는 이유를 댔습니다.

일부 동지들도 현실적 조건을 이유로 후보를 내는 대선 투쟁을 우려했습니다. 지금도 무리한 행동으로 상처가 나고, 앞으로 만들어 질 변혁적 노동자 정당의 운명을 걱정하는 견해입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냉정한 이성을 앞세운 시기 상조론은 정치적 무능에 불과합니다. 지금 우리가 대선 투쟁을 결의하지 못하면 다음 투쟁도 결의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우리가 대선투쟁을 한다는 것을 우습게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긍정한다면 우리의 투쟁이 장난이고, 우리의 역사가 장난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가장 약하고 아팠기에 우리는 가장 강력한 투쟁을 할 수 있습니다. 10월 27일 비정규직 없는 일터 만들기 10만 촛불 집회 때 민교협의 이도흠교수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위가 어딥니까? 물었습니다. 머리입니까, 가슴입니까? 모두 아닙니다. 바로 상처 난 곳입니다. 송곳에 찔린 작은 상처만 입어도 온 신경이 그곳으로 집중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죠.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족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도 자식도 아닌 아픈 사람이라 합니다. 아파서 투쟁하는 우리가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되는 것이 좋은 세상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불가능하기에 거기에 도전합시다. 머리로 타산하면서 용기를 잡아먹는 소심함을 노동자의 뱃장으로 부숴버립시다.

우리의 주장은 간명합니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결의 힘을 비정규직 당사자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정리해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자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빈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민에게 권력을 주라 했듯이 말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빈곤과 차별을 받고 있는 당사자들의 요구 속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책이 차고 넘칩니다.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가 바로 우리의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11월 3일 강정에서 서울까지 한 달을 행진한 2012 생명평화대행진의 결과로 만들어진 선언과 10대요구가 바로 우리의 정책입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쌍용차투쟁, 유성투쟁, 재능교육투쟁, 철거민투쟁을 하고 있는 이들의 요구가 우리의 정책입니다. 장애활동가 김주영 동지가 ‘24시간 활동보조인 보장을 요구’하며 광화문역 지하에서 농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집에 화재가 나서 질식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섯 발자국만 걸어 나가면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활동보조인 없이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9일 김주영동지와 유사한 사건으로 13살 어린 아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화재가 나서 뇌병변1급장애 동생을 구하려다 누나는 목숨을 잃고 장애동생은 의식불명 상태에 있습니다. 이들의 요구에 정부는 예산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입니다. 온몸을 다해 장애인동지들이 외치는 구호가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는 투쟁하는 민중들의 벗이 아니라 투쟁하는 민중들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요구 위에 우리의 해방을 향한 전망을 더해 대선 투쟁을 전개할 것입니다.

노동자 계급은 자기를 해방시켜 전체를 해방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럼으로 노동자 계급은 세상을 계급적으로 보는 것으로도 가장 이타적인 존재가 됩니다. 모든 피해대중들 생존을 위해, 인간다움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의 가장 적극적인 단결과 연대의 주체입니다.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노동자의 입장으로 계급의 착취와 차별의 사슬을 끊고,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 반제 평화 통일의 문제, 생태의 문제, 역사 청산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현재 자본주의는 대공황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자본의 탐욕이 자기마저 잡아먹는 실정입니다. 자본주의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 인류의 이성을 깨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벌어진 어큐파이가 그렇고, 그리스를 포함하여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투쟁이 그렇습니다. 유럽 5개국은 공동총파업을 결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한의 진보정치는 신자유주의 포로가 되어 퇴행을 거듭했습니다. 현실을 타파하지 않고 현실에 타협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정치적으로 뇌사가 되었고, 노동자 민중은 정치의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미국식 정치가 강요되고 있습니다. 엊그제 끝난 미 대선을 보십시오, 오바마나 롬니, 어디에 노동자 민중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대선투쟁을 하는 것은, 한국정치가 영원히 미국화, 노동자 민중의 영원한 주변화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우리가 대선을 포기하는 것은 노동자 민중과 역사 앞에 가장 큰 무책임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투쟁들. 그 투쟁과 함께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용은 다르지만 본질적 핵심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바로 자본과의 싸움입니다. 생태를 파탄내고, 사람의 탐욕과 경쟁의 괴물로 만들고, 모든 공동체를 깨부수고 필요하다면 언제나 전쟁을 일삼는 자본과 제국주의 탐욕에 맞선 투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노동자대통령 후보는 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싸우다 구속되는 자리라고 외쳤습니다. 지금 산산이 부서져 버린 노동자 변혁 정치의 종자가 살아 있음을 외치는 절박한 의무라 했습니다. 처음부터 안하는 무능보다, 안 돼도 발품과 손품을 들여 최선의 실천을 하는 것이 옳기에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섰습니다.

몇 일전 대선후보로 나간다고 인사 차 백기완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선생은 ‘요즘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당당함과 배짱이 없다. 배짱 있게 나가라.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말다하며 생명 아닌 것(자본)과 분명히 싸우라’ 고 하시며 힘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생명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인간과 생명을 위한 투쟁은 한시라도 미룰 수 없기에 오늘 배짱과 용기로 대선 투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불가능에 도전을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로는, 정권을 바꾸고 사람을 바꿔도 소용없습니다.
빈곤과 차별은 더욱 커질 뿐입니다.
돈이 주인인 세상을 사람이 주인이 세상으로 돌리기 위해, 인간 존엄성의 이름으로! 노동자 민중의 마음이 뜨겁게 움직여야 합니다. 촛불을 들었던 손으로 혁명의 주먹을 움켜져야 합니다.

돈에 물든 금배지 정치를 깨고 거리에서,
노동자 민중의 억센 투쟁의 근육 속에서,
모든 노동자 민중의 연대의 손길 속에서 사회 혁명과 인간 해방의 정치가 노동자 민중 자신들의 힘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노동자 대통령 후보는 이 꿈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당당하게 나가겠습니다.

동지들!
때론 나 하나의 결심이 역사입니다.
노동자의 배짱과 용기로 함께 가보지 않은 길,
하지만 가야할 길 힘차게 함께 어깨 걸고 갑시다!
땀과 눈물 분노를 모아 온몸으로 말하고 온몸으로 투쟁하겠습니다.
함께 합시다. 감사합니다.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