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취재노트) 그녀의 역사를 기억한다
정봉화
동네 어귀 곳곳에 붙은 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벽보에 눈길을 준다. 벽보를 보다 7명 후보 가운 데 4명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새삼 떠올린다. 여 성 대통령후보가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던가? 없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3대 때 뉴욕총영사관 부영사를 지낸 홍숙자 씨가 사회민주당 후보 로, 14대 때 신민당 부총재를 지냈던 국회의원 김 옥선 씨가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4명 여성 후보 가운데 여성 프레임을 이용하는 후보는 1명뿐이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내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 보는 ‘당당한 대통령’, 무소속 김소연·김순자 후 보는 ‘노동자 대통령’을 강조했다. 박 후보가 여성 정체성을 보수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다른 후 보들은 이념·계급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박 후보에 대한 ‘여성성’ 논란을 떠올리며 쓴웃음 짓다가, 기호5번 포스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 그녀다.
2008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의 마지막 날 그녀를 만난 적이 있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인 ‘기륭전자 투쟁’을 이끈 김소연 후보. 당시 그녀 는 80일이 넘는 단식으로 깡마른 몸에 링거 주사 를 꽂고 있었다. 삭발 투쟁으로 깎은 머리카락이 조금씩 덥수룩하게 자라고 있었다.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이었던 그녀는 당시 1 000일이 넘는 파업투쟁을 이끌며 “모두 나서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기륭전 자 투쟁은 6년간 이어졌고, 2010년 11월 그녀는 끝까지 함께 한 노동자 10명과 함께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그리고 2년 뒤, 그녀가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내걸고 ‘우리의 정치’를 하려고 대선 후 보로 나섰다. 그녀는 “소외된 당사자가 직접 나서 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싸우려고 출마하게 됐다” 고 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으로부터 소외돼 있는 군소 대통령 후보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투쟁의 역사를 기억한다. 자신이 살아온 역사를 외면하는 후보들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곁에서 한결같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김소연 후보에게 응원을 보낸다.